"쏴아아 - "
(의성어를 넣으니, 뭔가 대단한 글이 나올 것 같습니다. 흐뭇하군요.)
(바야흐로 똥배가 무르익은 2010년과는 거리 먼 사연임을 미리 밝힙니다.)
1997년 여름, 학창시절 유난히도 잠이 많았던 저는 그날도 느즈막하니 집을 나섰습니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기만 하면 온몸이 찌푸둥한것이 삭신이 쑤셨거든요. 잠은 오지, 학교는 가기 싫고, 게다가 비까지 오니.. 불쾌지수는 이미 <구름하늘 저멀리~♬>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소심한 저, 학교를 땡땡이 칠 생각은 절대 못합니다. 그렇게 온몸을 짜증으로 무장한체 꿍얼거리며 버스정류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이놈에 비는 어찌나 이리도 오는건지, 한발짝 걸을때마다 애기들 <삑삑이신발>처럼 입에서 욕이 삑삑 세어 나왔습니다. 길에서 누군가와 우산이 부딪히기라도 하면 그자리에 일자로 누워서 학교가기 싫다고 징징거릴 생각이었습니다. 어쨌거나 툴툴거리는 사이, 어느새 저는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까지 와있었습니다. 11시쯤 집을 나서서 그런지, 반대편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은 정말 한산해 보이더군요.
그런데 바로 그때!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던 내옆에 그 억수같이 오던 비를 온몸으로 맞고있는 한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나이는 대략 25세정도로 보였고, 빨간색 치마에 빨간색 구두.. 그리고 긴 생머리.. 자그마치(?) 18년을 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처음 봤습니다. 고개를 툭 떨구고 있는 그녀 역시 신호가 바뀌는것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비를 너무 맞아서 그런지, 이미 그녀의 옷은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아 - 정말 너무너무 예쁘다..." 이 생각을 하면서 곁눈질로 그녀를 훔쳐보기를 아마 수십번은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복에 오줌을 지릴 뻔한 경험을 하게 되어 버렸답니다. 빨간치마의 그녀, 긴머리를 뒤로 활짝 넘기며 저를 쳐다보더니.. 또각또각 제게 다가오는게 아니겠습니까? "아.. 내가 본게 기분이 나빴나봐.. 다리는 그렇게 많이 안봤는데.. 미치겠네 증말.." 그녀가 제 바로앞에 올때까지의 시간은 약 5초정도 였지만, 제가 그사이 생각을 한 횟수는 500번은 됐던 것 같습니다. (계산해보니 초당 100번의 생각을 했다는 건 좀 오바이긴 하군요.)
"저기요.."
"... (먼산을 바라봤습니다. 다행히 대구는 분지 ♪)
"저.. 저기요.."
"... 네. 네? 저요?"
"네 그쪽이요."
"네.. 왜그러시죠?"
"저기... 우산 좀 같이 써도 될까요?"
"네. 그래요.. ....... 네????"
이거 뭔일이랍니까. 빨간치마의 그녀가 제게 다가 온 이유는, 다름 아닌 우산을 함께 쓰기 위함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녀는 제 왼쪽 팔에 살짝.. 아주 살짝 손을 올리고 우산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가슴이 쿵쾅쿵쾅! 심장이 히벌렁히벌렁!!(이상한 단어 써서 죄송합니다) 머릿속은 이미 흑백이 되어버린지 오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응?)는 10~20초 정도 함께 우산을 쓰고 있었고 그 시간 동안의 세상은.. 마치 모든 사람이 사라진 듯, 빗소리만 적적하게 들리더군요.
그렇게 우리는 함께 우산을 쓰고 버스정류장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함께 기다렸습니다. 그날따라 제가 기다리는 버스는 왜이렇게 안오는지.. 상기된 표정의 저와 그녀는 그렇게 또 10여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제서야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나니, 그녀의 향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다시금 바라본 그녀는 말그대로 <여신>이었습니다.
저는 버스를 타면서 그녀에게 멋있게 우산을 건네주고 학교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비맞는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전 쿨하니까 - 혹시 아나요? 그녀와 제가 나이를 넘나드는 운명적 사랑을 할게 될지 말입니다. 옆에 있는 동안, 별별 잡생각이 다들었습니다.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그때 저는 아마도 머릿속으로는 그녀와 키스까지 했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이잖아요 - (이해좀;;)
잠시후..
"교복을 보니.. 예고 학생인가봐요?" (예술고등학교)
"네.."
"그럼 택시타고 가요. 저도 그 근처에 내려요."
"저기..저 돈없어요. 승차권 뿐인데.."
"제가 낼께요."
우리는 그렇게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택시안에서도 그녀와 저는 마치 다툰 연인마냥, 그저 적막함이 흐를 뿐이었습니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누군지도 모를뿐더러 낮선여자와의 대화가 그리 익숙하지 않은 저였거든요. 긴장된 마음을 감추지 못해, 내내 창문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그녀가 또한번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름이 뭐예요?"
"네? 네.. 저 현우...라고 해요.."
"네? ㅎㅎㅎㅎ 현우?"
"네.. 왜웃으세요.."
"아..아니예요 ㅎㅎ"
그녀는 핸드백 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찾더니, 이내 제게 명함 한장을 건내줬습니다. 그녀가 제이름을 듣고 웃었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겠더군요. 명함에 적힌 그녀의 이름.. "현우" 였습니다. 그 순간 이름이 남자같다는 생각보다는 "우리는 운명이야..." 라는 생각이 우선 들더라구요. 정말 뭔가 특별한 운명처럼 느껴졌습니다. 비오는날 느닷없이 우산을 씌워달라고 부탁하던그녀.. 그리고 우연찮게도 가는 방향도 같았던 그녀.. 이름도 저랑 같은 "현우"...
이름 이야기를 계기로 우리는 학교에 도착하기 전까지 즐거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녀는 저같은 동생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절더러 동생하지 않겠냐며 물었고, 저역시도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러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전 누나가 있습니다.-_-) 같은 이름이다보니 "현우누나" 라고 부르는게 어색했지만, 천사같은 그녀와 함께 있을수만 있다면 이름이 칠득이면 어떻고 또 삼식이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버스정류장에서의 어색함을 잊고 한참 동안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연애"에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이윽고 학교 정문까지 도착을 했고 저는 택시에서 내리며 그녀에게 우산을 건냈습니다. 하지만 활짝 웃으며 괜찮다는 그녀, 되려 저보고 잘 가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군요. 머리 만지는걸 엄청 싫어하는 저인데, 그때는 : D 이런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꼭 연락하라며 택시를 타고 점점 멀어지는 그녀.. 그때 그녀에게 제가 한 말은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것도 학교 앞에서..
"누나~ 택시 태워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저는 귀에 입을 걸고서 유유히 등교를 했습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더군요.
교실에 도착하자 마자 반 친구들을 모아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 시간은 제 자랑의 향연이었습니다. 어깨는 이미 머리보다 더 올라가 있었고, 친구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연락을 해보라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예쁜여자가 그때 왜 비를 맞고 서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 하나만으로도 대화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그렇게 친구들에게 실컷 자랑을 한 후 수업이 시작될때 즈음, 저는 그녀에게 받았던 명함을 몰래 꺼냈습니다. 그리고 명함을 자세히 보면서 그녀를 다시금 생각했었습니다. "전화를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도 하면서..
"대구 남구 **동.."
"이현우"
"011-***-****"
"**주점"
"음.. 주점에서..일하는구나.. ......응? 주점?????????"
명함을 꺼내 본 순간 무언가가 제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느낌이었습니다. "주점이라니.. 그렇게 예쁜 누나가 주점에서 일을 하다니..".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라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점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명함이 있다는 것도 사실 처음 알았거니와, 주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몸을 팔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제 학창 시절이었기에 그 충격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더군요.
그녀가 비를 맞고 있던 이유도.. 자꾸만 이상한 상상으로만 끌려가고, 또 그 빨간치마.. 그리고 빨간구두.. 그때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들은 모두 "주점" 이라는 단어와 함께 멀리 사라져만 갔습니다. 전화는 커녕, 이 명함을 어떻게든 빨리 숨기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행여나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볼까봐 조마조마한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믿기가 싫었습니다. 제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신>같은 그녀가 그런곳에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믿기가 싫었습니다.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환하게 미소짓던 그녀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했지만, 도무지 연락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연락할 용기를 얻지 못한 저와 그녀는 그렇게 잊어져 갔습니다. 천사처럼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도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 갔습니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말이죠..
. . .
그리고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원래 이렇게 장면이 바뀌게 되면 저는 멋있게 성장해 있고, 시크한 도시남자의 느낌으로 말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군요.)
지금쯤 뭘하고 있을까? 그때 연락이라도 한번 해볼껄 그랬나?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괜시리 미소를 머금게 되는걸 보니, 한편으로는 너무너무 예쁜 추억이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리고 참 미안했습니다. 그렇게나 특별한 인연이라 생각을 했는데, 명함에 적혀있는 단 두글자때문에 연락을 하지 못했던.. 아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제가 한심하기도 했구요. 아무리 그래도 전화 한통정도는 해볼걸 그랬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에서라도 사과를 드리고 싶네요.
지금은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지만,
아주 가끔은 비가 오는날 횡단보도에 서있을때면 어렴풋이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기분좋게 웃곤 한답니다. :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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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어를 넣으니, 뭔가 대단한 글이 나올 것 같습니다. 흐뭇하군요.)
(바야흐로 똥배가 무르익은 2010년과는 거리 먼 사연임을 미리 밝힙니다.)
http://www.flickr.com/photos/neotint
이놈에 비는 어찌나 이리도 오는건지, 한발짝 걸을때마다 애기들 <삑삑이신발>처럼 입에서 욕이 삑삑 세어 나왔습니다. 길에서 누군가와 우산이 부딪히기라도 하면 그자리에 일자로 누워서 학교가기 싫다고 징징거릴 생각이었습니다. 어쨌거나 툴툴거리는 사이, 어느새 저는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까지 와있었습니다. 11시쯤 집을 나서서 그런지, 반대편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은 정말 한산해 보이더군요.
http://www.flickr.com/photos/nachoissd
"아 - 정말 너무너무 예쁘다..." 이 생각을 하면서 곁눈질로 그녀를 훔쳐보기를 아마 수십번은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복에 오줌을 지릴 뻔한 경험을 하게 되어 버렸답니다. 빨간치마의 그녀, 긴머리를 뒤로 활짝 넘기며 저를 쳐다보더니.. 또각또각 제게 다가오는게 아니겠습니까? "아.. 내가 본게 기분이 나빴나봐.. 다리는 그렇게 많이 안봤는데.. 미치겠네 증말.." 그녀가 제 바로앞에 올때까지의 시간은 약 5초정도 였지만, 제가 그사이 생각을 한 횟수는 500번은 됐던 것 같습니다. (계산해보니 초당 100번의 생각을 했다는 건 좀 오바이긴 하군요.)
"저기요.."
"... (먼산을 바라봤습니다. 다행히 대구는 분지 ♪)
"저.. 저기요.."
"... 네. 네? 저요?"
"네 그쪽이요."
"네.. 왜그러시죠?"
"저기... 우산 좀 같이 써도 될까요?"
"네. 그래요.. ....... 네????"
http://www.flickr.com/photos/zyllan
그렇게 우리는 함께 우산을 쓰고 버스정류장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함께 기다렸습니다. 그날따라 제가 기다리는 버스는 왜이렇게 안오는지.. 상기된 표정의 저와 그녀는 그렇게 또 10여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제서야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나니, 그녀의 향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다시금 바라본 그녀는 말그대로 <여신>이었습니다.
저는 버스를 타면서 그녀에게 멋있게 우산을 건네주고 학교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비맞는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전 쿨하니까 - 혹시 아나요? 그녀와 제가 나이를 넘나드는 운명적 사랑을 할게 될지 말입니다. 옆에 있는 동안, 별별 잡생각이 다들었습니다.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그때 저는 아마도 머릿속으로는 그녀와 키스까지 했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이잖아요 - (이해좀;;)
잠시후..
"교복을 보니.. 예고 학생인가봐요?" (예술고등학교)
"네.."
"그럼 택시타고 가요. 저도 그 근처에 내려요."
"저기..저 돈없어요. 승차권 뿐인데.."
"제가 낼께요."
http://www.flickr.com/photos/dylanpix
택시안에서도 그녀와 저는 마치 다툰 연인마냥, 그저 적막함이 흐를 뿐이었습니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누군지도 모를뿐더러 낮선여자와의 대화가 그리 익숙하지 않은 저였거든요. 긴장된 마음을 감추지 못해, 내내 창문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그녀가 또한번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름이 뭐예요?"
"네? 네.. 저 현우...라고 해요.."
"네? ㅎㅎㅎㅎ 현우?"
"네.. 왜웃으세요.."
"아..아니예요 ㅎㅎ"
그녀는 핸드백 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찾더니, 이내 제게 명함 한장을 건내줬습니다. 그녀가 제이름을 듣고 웃었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겠더군요. 명함에 적힌 그녀의 이름.. "현우" 였습니다. 그 순간 이름이 남자같다는 생각보다는 "우리는 운명이야..." 라는 생각이 우선 들더라구요. 정말 뭔가 특별한 운명처럼 느껴졌습니다. 비오는날 느닷없이 우산을 씌워달라고 부탁하던그녀.. 그리고 우연찮게도 가는 방향도 같았던 그녀.. 이름도 저랑 같은 "현우"...
이름 이야기를 계기로 우리는 학교에 도착하기 전까지 즐거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녀는 저같은 동생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절더러 동생하지 않겠냐며 물었고, 저역시도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러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전 누나가 있습니다.-_-) 같은 이름이다보니 "현우누나" 라고 부르는게 어색했지만, 천사같은 그녀와 함께 있을수만 있다면 이름이 칠득이면 어떻고 또 삼식이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버스정류장에서의 어색함을 잊고 한참 동안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연애"에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이윽고 학교 정문까지 도착을 했고 저는 택시에서 내리며 그녀에게 우산을 건냈습니다. 하지만 활짝 웃으며 괜찮다는 그녀, 되려 저보고 잘 가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군요. 머리 만지는걸 엄청 싫어하는 저인데, 그때는 : D 이런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꼭 연락하라며 택시를 타고 점점 멀어지는 그녀.. 그때 그녀에게 제가 한 말은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것도 학교 앞에서..
"누나~ 택시 태워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저는 귀에 입을 걸고서 유유히 등교를 했습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더군요.
교실에 도착하자 마자 반 친구들을 모아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 시간은 제 자랑의 향연이었습니다. 어깨는 이미 머리보다 더 올라가 있었고, 친구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연락을 해보라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예쁜여자가 그때 왜 비를 맞고 서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 하나만으로도 대화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그렇게 친구들에게 실컷 자랑을 한 후 수업이 시작될때 즈음, 저는 그녀에게 받았던 명함을 몰래 꺼냈습니다. 그리고 명함을 자세히 보면서 그녀를 다시금 생각했었습니다. "전화를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도 하면서..
"대구 남구 **동.."
"이현우"
"011-***-****"
"**주점"
"음.. 주점에서..일하는구나.. ......응? 주점?????????"
http://www.flickr.com/photos/bonita_nowick
그녀가 비를 맞고 있던 이유도.. 자꾸만 이상한 상상으로만 끌려가고, 또 그 빨간치마.. 그리고 빨간구두.. 그때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들은 모두 "주점" 이라는 단어와 함께 멀리 사라져만 갔습니다. 전화는 커녕, 이 명함을 어떻게든 빨리 숨기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행여나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볼까봐 조마조마한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믿기가 싫었습니다. 제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신>같은 그녀가 그런곳에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믿기가 싫었습니다.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환하게 미소짓던 그녀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했지만, 도무지 연락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연락할 용기를 얻지 못한 저와 그녀는 그렇게 잊어져 갔습니다. 천사처럼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도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 갔습니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말이죠..
. . .
그리고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원래 이렇게 장면이 바뀌게 되면 저는 멋있게 성장해 있고, 시크한 도시남자의 느낌으로 말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군요.)
지금쯤 뭘하고 있을까? 그때 연락이라도 한번 해볼껄 그랬나?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괜시리 미소를 머금게 되는걸 보니, 한편으로는 너무너무 예쁜 추억이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리고 참 미안했습니다. 그렇게나 특별한 인연이라 생각을 했는데, 명함에 적혀있는 단 두글자때문에 연락을 하지 못했던.. 아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제가 한심하기도 했구요. 아무리 그래도 전화 한통정도는 해볼걸 그랬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에서라도 사과를 드리고 싶네요.
http://www.flickr.com/photos/25685367@N00
지금은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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